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라토리 요시에 (문단 편집) === 세 번째 탈옥 === 2차 탈옥 후 3개월 뒤, 시라토리는 고스게 형무소에 있었던 시절에 자신을 담당했던 간수 중 '코바야시'(小林良蔵)라는 이름의 간수를 찾아간다. 그는 유일하게 시라토리를 학대하지 않고 챙겨줬던 간수였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에게 찾아갔던 것. 코바야시는 그를 들여보내 식사를 대접했고, 시라토리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시라토리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은 별로 개의치 않았으나 간수들의 고문과 학대로 지쳐 탈옥을 결심한 것이고, 그는 당시 일본 형무소의 야만적이고 부패한 시스템을 만천하에 밝혀내고 민사소송을 통해 자신의 법적 자유를 얻는 것이 목표라고 코바야시에게 털어 놓았으나, 코바야시는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 그를 경찰에 신고했으며, 시라토리는 결국 다시 체포되었다. 결국 경찰에게 다시 체포된 시라토리는 일본 [[홋카이도]] 최북단에 위치한, 악명 높은 [[아바시리 형무소]]로 이송되었다. 최북단에 있는 감옥인 만큼 굉장히 추운 날씨를 자랑했고, 죄수들에게 난방도 절대 허가해주지 않았다. 또 다시 이어진 간수들의 학대는 물론이고, 열쇠나 락픽으로는 아예 열 수 없고 철물 기술자가 중장비를 동원해야 겨우 열 수 있는, 총합 20kg에 달하는 수갑과 족쇄를 각각 시라토리의 팔과 다리에 채우기까지 했다. 이전 감옥에서와 마찬가지로 목욕 시간에만 이를 풀어주는 것이 허가되었다. 겨울을 지나 1944년 봄까지 겨우겨우 살아남은 시라토리는 마침내 탈옥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기상천외한 탈옥 방식을 선보인다. 그가 갇힌 아바시리 형무소의 독방 구조는 천장이 높지도 않고, 사람 어깨 넓이보다 작은 크기의 쇠창살이 박힌 창틀만이 있었다. 그마저도 팔다리에 20kg 수갑이 채워져 제대로 움직이기는커녕 밥 한 끼도 고개를 처박고 개처럼 먹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힘이 부족하면 인내심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시라토리는, 매 끼니마다 제공되는 [[미소시루]]를 조금씩 남겨 감옥문의 창틀에 뿌렸다. 이 짓을 몇 달 동안 꾸준히 한 결과 미소시루의 염분이 창틀을 부식시키다가 창틀의 나사가 빠졌고, 다음 해 봄에는 똑같은 방식으로 수갑까지 풀어버린 것이다. 쇠창틀, 수갑까지 모두 제거한 그에게 남은 마지막 관문은 그의 어깨 너비보다 작은 정문의 구멍이었다. 무슨 수를 써도 어깨가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결국 '''스스로 어깨를 탈골하여''' 구멍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마침 복도 천장의 창문 중 하나가 깨져 있었고, 그곳으로 탈출하는 데에 성공한다. 경찰은 형무소 인근 지역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도시에서는 그를 찾을 수 없었고, 시외로 도주했다면 홋카이도의 살인적인 추위와 곰 등의 맹수들이 들끓는 상황 속에서 살아남았을 리 없다는[* 비록 탈출 시기가 봄이기는 하지만 '''이 동네는 4월까지 [[폭설]]이 내린다.'''] 결론을 내리고 수색을 포기하기에 이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